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에 무엇을 만들 것인가 — 모방하기 어려움의 원천
AI 도구로 '만들 수 있음' 자체가 저렴해진 지금, 가치는 '만드는 것 이외'로 이동한다. 상품화되는 것과 희소하게 남는 것을 정리하고, 모방하기 어려움의 네 가지 원천(현실·제도/독자 데이터와 신뢰/taste/시간의 복리)으로부터, 만들면 우위가 있는 것을 생각한다.
’만들 수 있음’의 값이 떨어졌다
AI 코딩 도구의 발전으로, 앱이든 도구든 예전에는 전문 지식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짧은 시간에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멈춰 서고 싶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만들 수 있는 것만으로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의 기본으로, 공급이 갑자기 늘어난 것의 값은 떨어진다. AI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공급을 폭발적으로 늘렸다면, “만들 수 있음”의 가치는 구조적으로 떨어져 간다. 그렇다면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해서, ’만들 수 있음’의 반대편 — 고르고·판단하고·신뢰받고·전달하고·쌓아 올리는 쪽 — 으로 이동한다.
이 글에서는 “만들면 대단한/우위가 있는 것”을 그 역산으로 생각한다.
무엇이 저렴해지고, 무엇이 희소하게 남는가
먼저 AI가 무엇을 저렴하게 하고, 무엇을 저렴하게 할 수 없는지를 정리한다.
| 저렴해진다(상품화) | 희소하게 남는다(가치가 오른다) |
|---|---|
| 코드를 쓰는 것 | 무엇을 만들지의 판단(문제 선정) |
| 데모·MVP를 만드는 것 | 프로덕션에서 깨지지 않는 것(신뢰성·운용) |
| “그럴듯한” 양산물 | taste(고르고 다듬는 심미안) |
| 일반적인 지식·정보 | 독자 데이터·현장·인간관계 |
| 일회성 산출물 | 시간으로 복리가 붙는 자산 |
법칙은 단순하다. 생성이 무한히 저렴해질수록, 가치는 생성의 반대편으로 쏠린다. 이 비대칭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만들면 우위가 있는 것”이 보인다.
모방하기 어려움의 네 가지 원천
“만들면 우위”를 한마디로 바꿔 말하면 “만들 수 있어도 모방하기 어려운 것” 이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의 우위는 거의 “모방하기 어려움”과 같다. 그리고 그 원천은 대체로 다음 넷으로 수렴한다.
① 현실·제도(원자)
비트(정보)는 저렴해지지만, 원자(물리·현실)는 저렴해지지 않는다.
- 물리를 동반하는 것 — 하드웨어, 로보틱스, 제조, 에너지, 물류
- 규제·면허·안전이 벽이 되는 영역 — 의료, 금융, 인프라, 법
- “복잡한 현장의 통합”이 필요한 것 — 기존 업무·설비·사람과의 조율
소프트는 누구나 만들 수 있어도, 현실에 닿는 부분 자체가 진입 장벽이 된다. 데모는 하룻밤 일이지만, 현장에 파고들려면 시간과 신용이 필요하다.
② 독자 데이터와 신뢰
모델은 공통화되어 가므로, 차별화는 독자 데이터의 플라이휠로 이동한다.
- 실시간/프라이빗/힘들게 모은, 남이 가질 수 없는 데이터
- 특정 업계의 내부의 신뢰와 인간관계(AI는 ’업계의 신뢰받는 사람’이 될 수 없다)
- 쓸수록 데이터가 쌓이고, 정확도가 오르고, 갈아타기 어려워지는 구조
같은 AI 모델을 모두가 쓸 수 있다면, 승부는 “그 모델에 무엇을 먹일 수 있는가”로 옮겨간다.
③ taste(심미안·편집·큐레이션)
생성이 무료가 되면, 고르는 것·다듬는 것·마지막 10% 가 병목이 된다.
- 방대한 생성물에서 좋은 것을 골라 갈고닦는 편집력
- 일관된 작가성·세계관 — “누가 만들었는가”가 의미를 갖는 것
- 브랜드·신뢰 — “이 사람/이 곳이 말한다면”이라는 권위
양산이 무료가 된 세계에서는 양산의 반대(선별과 마감) 가 희소해진다.
④ 시간의 복리
하룻밤에 복제할 수 없는, 계속함으로써만 쌓이는 자산.
- 오래 모은 corpus(데이터·작품·기록)
- 키운 community나 독자
- 쌓아 올린 reputation
- 몇 년이나 도그푸딩하며 갈고닦은 “올바름”과 “깨지지 않음”
AI는 ’속도’를 모두에게 나눠준다. 그렇기에 속도로는 줄일 수 없는 시간 그 자체의 축적이 차이가 된다.
만들면 우위가 있는 것 — 카테고리
이 네 원천에 올라타는 것을 만들 대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현실 세계에 파고드는 것 — 하드웨어/로보/제조/에너지/물류, 규제 산업
- 독자 데이터의 플라이휠을 돌리는 것 — 쓸수록 쌓이고 강해지는 제품
- 편집·큐레이션·작가성 — 양산의 반대에 가치를 두는 것
- 프로덕션에서 깨지지 않는 신뢰성·운용 — 후술
- 네트워크 효과·표준·커뮤니티 — 양면 시장, 프로토콜, 표준(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자산)
- 프론티어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진짜 새로운 능력 — 새로운 모델/알고리즘/과학/언어 처리계 그 자체
“프로덕션에서 깨지지 않음”은 AI 시대에 오히려 가치가 오른다
신뢰성은 덧붙이고 싶다. AI는 데모의 문턱을 크게 낮추지만, 프로덕션의 문턱은 낮추지 않는다. 오히려 “돌아가지만 신뢰할 수 없는 코드”가 세상에 넘칠수록, 그것을 검증해 신뢰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힘의 가치는 오른다. 테스트와 검증이 AI 시대에 중요성을 더하는 것은 이 비대칭 때문이다(이 점은 소프트웨어 테스트의 계보에서도 다뤘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의 ’무엇이든’은 대개 이미 있는 것의 조합을 가리킨다. 아직 없는 것을 만드는 것, 그리고 만든 것을 깨지지 않는 상태까지 끌고 가는 것은 여전히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남는다.
개인을 위한 필터 — 네 가지 물음
무엇을 만들지 정할 때, 다음 물음으로 거르면 빗나가기 어렵다.
- AI가 하룻밤에 복제할 수 있는가? — 그렇다면 우위가 없다. 축적·독자 데이터·신뢰·현장 중 무엇이 있는가
- ’만들 수 있음’이 정말 병목이었는가? — 아니라면 진짜 병목(전달·신뢰·문제 선정)을 잡는 편이 효과적이다
- 시간으로 복리가 붙는가? — 쓸수록·계속할수록 강해지는 자산이 되어 있는가
- 자신에게만 있는 불공정한 강점(unfair advantage)에 올라타 있는가? — 깊은 전문성, 독자 데이터, 독자적 시각·작가성
정리
한마디로 말하면, “만들 수 있음”이 아니라 “만들 수 있어도 모방되지 않는 것”을 만든다.
AI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앱을 하나 더 만드는 것만으로는 가치가 나기 어렵다. 만든다면 그 위에 “독자 데이터/커뮤니티/신뢰/현실과의 접속/계속함으로써만 쌓이는 깊이” 중 하나를 반드시 한 겹 덧입힌다. 모방하기 어려움의 원천은 대체로 (a) 현실·제도, (b) 독자 데이터와 신뢰, (c) taste, (d) 시간의 복리 중 하나로 귀착한다.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만드는 것’ 이외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무엇을 만드는가 이상으로, 그 주위에 무엇을 쌓는가로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