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
간절히 원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있는 것
아무리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아직은. 어쩌면 영원히.
말로 하면 당연한 소리지만, 이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는 의외로 어렵다. 특히 지금은, AI 도구 덕분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다. 사이트는 반나절이면 만들 수 있다. CLI 도구는 오후면 완성된다. 아이디어와 구현 사이의 거리가 이보다 가까웠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것들
하룻밤 만에 언어가 유창해지지 않는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그림을 잘 그릴 수 없다.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뭔가를 이해시킬 수 없다. 경험을 지름길로 압축할 수 없다.
AI는 “할 수 있는 것”을 증폭한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이 가속할수록, 완고하게 빨라지지 않는 것들이 더 눈에 띈다.
솔직한 반응
이에 대한 솔직한 반응은 짜증이 아니다. “받아들임”에 더 가까운 무언가다.
체념과는 다르다. 체념은 손을 떼는 것. 받아들임은 상황을 또렷이 본 위에서 자신의 에너지 사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없으면, 지금은 할 수 없다. 아무리 원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이건 사실 자유로운 일이다.
바꿀 수 없는 것과 싸우기를 멈추면,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자기 타임라인에서 결과를 요구하기를 멈추면, 그것 자체의 타임라인에서 진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은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해는 서서히 깊어지고 있다. 스킬은 선언 없이 쌓이고 있다.
시간이 걸리는 것들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은 서두를 수 없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1000일의 일러스트 연습. 몇 달에 걸쳐 퇴고하는 소설. 몇 년의 존재감으로 쌓아 올린 관계. 무언가를 겪어낸 끝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이해.
이런 것들은 AI가 지름길을 만들어 줄 수 없다. 그리고 그건 결함이 아니라 본질이다. 들인 시간은 최소화해야 할 비용이 아니다. 그것 자체의 실체다.
그러니까
원해도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 비법은 없다. 꼼수도 없다. 그걸 해결해 주는 프롬프트도 없다.
어쩔 수 없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나머지는 걸리는 시간만큼 걸리게 두자.